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3호소재지 :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이 집을 처음 지은 사람은 김중안(金重安, 1639~1705)이라고 하며 건축연대는 1700년 경 전후로 추측된다.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이 이 집에서 태어나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동야는 조선 영조(英祖)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어전(御前)의 면접시험에서 답안(答案)으로「孔子家語」에 나오는「魯人東埜畢事」를 인용하였는데, 영조(英祖)가 “동야 선달(先達)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면서 시권(試券)을 외우라고 명(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호를 “동야”라고 하였다. 이 집은 소요산록에 터를 잡아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앞마당에 이단의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서있는 “一”자형 사랑채와 뒤에 “冂”형의 안채가 튼 “口”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민도리집으로 사랑채의 기능이 남아 있는데, 특히 큰 사랑방이 있는 사랑채는 원초적인 모습의 초가이다.이 집은 안동지방에서 보기 드문 가옥형태이다.※ 그림설명(그림순) ①사랑채 ②동야고택 현판 ③사랑채와 안채의 측면 ④뒤꼍 ⑤안채봉당 ⑥아래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