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세기경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에 있는 작은 마을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기고 바실리카(교회) 와 황궁을 비잔티움에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잔티움의 이름을 자기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으로 개명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게됩니다. 이즈음엔 유명한 이스탄불로 알려진 도시입니다.346년 경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이 황궁 터를 개발하면서 옆에 바실리카를 짓게했는데 이 교회는 폭도들에 의해 불에 타 흔적없이 사라져 현존하지 않습니다.첫번째 하기야 소피아입니다.415년 황제 디오디씨우스 2세가 두번째 하기야 소피아 바실리카를 재 건축 하도록 명을 내리어 두번째 바실리카가 세워졌으나 이 건물도 폭도들에 의해 거의 소실되고 석조물만 몇개 남아 있습니다.(사진 5번에서 8번까지입니다.9번과 10번은 두번째 하기야 소피아의 페허에서 사는 고양이... 귀엽네요^^)사진 1번 부터4번까지가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세번째 바실리카의 외부 모습입니다.종교와 정치의 끊임 없는 투쟁사를 간직한채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젠 박물관이 됬습니다. 현 이스탄 불에 있는 이 박물관은 터키 말로 하기야는 quot;신성함quot;소피아는 quot;현명함, 슬기로움quot;이라는 뜻입니다.비잔틴 시대에는 그리스도 정교의 교회였었으며 라틴 제국시대에는 로만 캐돌맄성당이였고 오토만 제국 시대에는 모스크로 사용되여졋고 현대의 터키에서는 박물관으로 사용,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처가 되어 역사 속, 제국의 흥망 성쇄와 종교 분쟁의 세월을 안고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장소입니다.이 건축물은 당시 비잔틴 황제 Justinian I세 의 명령으로 532년에 시작 537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5년이란 시간 안에 세워졋다합니다. 그 규모와 크기는 말할 필요도 없으려니와 그 옛날의 건축 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건물은 3번째 하기야 소피아이고 그리스 기하 학자들에 의하여 디자인 되어졌다네요. 기하학자 이시도어 미레투스( Isidore Miletus), 와 안테미우스(Anthemius of Tralles)가 사각형의 벽에 둥근 돔을 얹어 놓는 어려운 문제를 기하학적으로 풀어 새로운 건축 공법을 발견한, 건축 역사를 영원히 바뀌게 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합니다. 이후 이 공법은 바로 건너 편에 있는 불루 모스크의 모델이 되었고 동방의 많은 교회 건축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네요. 러시아 정교의 교회들의 둥근 첨탑들.. 이 하기야 소피아의 바리에이션인가 합니다.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진 이 건물의 년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537년 (1204-1261까지 로마제국의 로만 캐돌맄)-1453까지 그리스도 정교회의 바실리카1453-1931까지 오토만 제국의 모스크로 전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천사들과 성인들의 모자이크를 지웠으며 또는 회벽을 덧칠한 후 무슬림들의 모스크에 필요한 기물들이 첨가되어 졌습니다. 실내 사진은 다음 번에 올리기로 합니다.1935년- 2016년 현재까지 ------ 박물관,보수작업이 진행 중이고 비잔틴 모자이크와 무슬림 장식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1054년에 일어난 대 종교 분열로 로마의 그리스도 교는 그리스도 정통파와 로만 캐돌맄으로 분열되어지고 로마제국도 로마를 중심으로한 서 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한 동 로마제국(비잔틴) 으로 분열되어집니다. 그리하여 1204년 부터1261년 까지 하기야 소피아는 로만 캐돌맄의 성당으로 사용되어졌다합니다.덧 부쳐 이 하기야 소피아는 비잔틴 건축의 전형이며 대표적인 건축물이라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