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조선을 건국하고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풍수지리에 뛰어났던 무학대사가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도읍지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현재의 서울을 찾아냈다. 그런데 서울이 풍수적으로 국운이 500년밖에 유지하지 못 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조선의 국운을 위해 무학대사에게 선바위에서 천일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그러면서 선바위가 유명해졌다고 한다.천일기도가 끝난 후 1395년 한양에 도성(都城)을 쌓고 있는데, 선바위를 놓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 안쪽으로 넣으면 천 년 도읍이 되어 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5백년 도읍만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선바위가 도성 안에 있으면 불교가 다시 흥해서 고려처럼 불교 때문에 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팽팽한 두 사람의 주장에 태조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서울 인왕산에는 아이 낳기를 기원하는 선바위가 있다. 그리고 이와 마주한 안산에서도 기자(祈子)와 관련한 바위를 찾을 수 있다. 안산(鞍山)은 인왕산의 서쪽에 자리한 낮은 산으로 현재 무악재에 있는 산이다. 예전에는 무악(毋岳)으로 불렸는데, 한양으로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산과 무악산 중에서 어느 산을 주산(主山)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팽배했었다. 결국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도읍이 정해졌으나 이후에 도성을 지을 때에도 무악을 돌아서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서울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인왕산에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를 모신 국사당(國師堂)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1925년 남산에서 옮겨 온 것으로 조선 건국의 두 인물을 모신 무속신당(巫俗神堂)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는 많은 무속인들이 찾아와 굿을 하고 있다. 이 국사당의 위쪽에는 높이 6.7m, 넓이 7m의 커다란 두 바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선바위’라고 부른다. 바위 아래로 가로 10m, 높이 70~80cm의 제단이 시멘트로 단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선바위를 설명한 안내판에는 이 바위가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불교의 ‘禪’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바위를 석불님, 관세음보살님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후에 첨가 된 설명으로 보이고, 선돌의 모습으로 서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임신을 원하는 부인들이 선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를 보면 이 바위가 생명의 탄생과 관련한 성석(性石)임에 틀림없다. 특히 작은 돌을 선바위에 붙이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돌을 문질러 붙인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에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이러한 선바위에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찾아가는 방법:3호선 독립문역 하차 세란병원 (정면.촤측)우측 골목으로 아파트 단지쪽으로~ 쭉 올라 가면 선바위 표지판이 보이고 계속 올라가면 선바위 장소가 나옴니다.촬영장소: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인왕산의 선바위